영산포 선창에서 출발하는 황포돛배를 타면 선장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황포돛배는 또한 사랑의 공간이고 이별의 공간이다. 수백번은 오갔을 물길 위에서 황포돛배는 숱한 만남과 헤어짐 을 반복하던 사랑의 장소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임을 그리워하던 눈물이 모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그곳, 석관정의 이별바위에는 애잔함이 서려있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장정들도 배에 몸을 싣고 먼 길 떠나면 가족들과 아내들은 이별바위 부근에 이르러 더 이상 배를 쫓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이별바위가 당신의 사랑을 지켜줄 것이다.
황포돛배는 영산포 선창 매표소에 가면 승선할 수 있다. 왕복 6km의 뱃길은 40분 정도 걸리는데 한 번에 기관사를 포함해 12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고, 승선료는 8천원이다. 높이 7m, 길이 12.5m, 폭 2.5m의 돛배가 관광객을 태운다. 선창에서는 황포돛배보다 더 큰 배인 96톤급 왕건호도 운항중이다. 왕건호는 영산포선착장부터 다시 회진마을 앞까지 10km 구간을 55분 동안 운항한다.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150만평 규모의 차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전남 보성에 있는 대한다업관광농원은 한국 유일의 차(茶)관광농원이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밭을 배경으로 농원이 들어앉아 있다. 보성은 원래부터 한국차의 명산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볼때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바다와 가깝고, 기온이 온화하면서 습도와 온도가 차 재배에 아주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대한다업관광농원이 이곳에 차재배를 시작한 것은 1957년부터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재배지라 할 수 있다.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내륙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차의 품격도 국내 제일을 자랑한다. 보성읍 봉산리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산록에 자리잡은 농원은 무려 30여 만평이나 되는 드넓은 평원을 형성하고 있다. 모두가 차밭으로, 농원 건물과 함께 그림같은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농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신주 크기의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서있어 신선감이 더욱 넘친다.대한다업관광농원에서는 '봉로(峯露)' 라는 이름의 한국 차를 전국의 차전문 체인점에 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차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농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차밭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직접 차잎을 따는 일도 하면서 건전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남쪽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아름다운 절 미황사,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 그대로를 담은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미황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되었던 사찰이며, 옛날에는 크고 작은 가람이 20여동이나 있었던 거찰이거니와 대웅보전은 보물 제947호로서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미황사의 창건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신라 경덕왕 시절에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는데, 배 안에 들리는 범패 소리를 듣고 의조화상은 스님들과 동네 사람 100명을 이끌고 포구를 찾았다고 한다.돌배를 확인해보자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었고, 배 안엔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등의 경전, 불상과 탱화와 금환, 검은 돌 들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금인은 "나는 본래 우전국의 왕으로, 여러나라를 돌다 드디어 부처님 모실 곳을 찾았다며"며,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 일어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예사롭지 않은 금인의 말에 의조화상이 그의 말대로 불상과 경전을 소에 싣고 길을 걷다보니, 소가 한번 땅바닥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고, 다시 계속 걷다가 산골짜기에 이르러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금인이 한 말처럼 소가 처음 누웠다 일어난 곳엔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에 머문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미황사 이름의 유래에도 창건 설화가 잘 반영되었는데, '미(美)'는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따온 것이고 '황(黃)'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에서 따왔다고 한다.달마고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낄 수 있는 이 곳 미황사에서는 매년 봄, '달마도고 힐링축제'가 열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