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16.8km에 달하는 해안도로로, 기암괴석ㆍ광활한 갯벌ㆍ불타는 석양이 만나황홀한 풍경을 연출하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특히 해안도로 아래 목재 데크 산책로로 조성된 3.5km의 해안 노을길은 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걷기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2006년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2011년 국토해양부의 제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평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국내 유일의 노을전시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펜션과 음식점 등이 갖추어져 있다.
자연생태공원은 오감만족의 체험관광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난 보존 육성사업과 함께 나비 ・ 곤충 ・ 우리꽃 등이 어우러진 친환경 자연생태공원으로 곤충생태관 조성사업 등 6개 사업을 추가「하늘에는 나비와 잠자리」「땅에는 꽃과 난초」「물속에는 물고기」가 어우러지는 테마별 관람공간을 조성, 사계절 쉬고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생태관광 명소로 확대 개발하였으며 나비·곤충표본전시관 등 전시관 5종과 12종의 관람시설, 청소년야영장 및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봄에는 대한민국 난대전,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국화향기 그윽한 대한민국 국향대전 행사가 펼쳐진다.
영산포 선창에서 출발하는 황포돛배를 타면 선장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황포돛배는 또한 사랑의 공간이고 이별의 공간이다. 수백번은 오갔을 물길 위에서 황포돛배는 숱한 만남과 헤어짐 을 반복하던 사랑의 장소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임을 그리워하던 눈물이 모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그곳, 석관정의 이별바위에는 애잔함이 서려있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장정들도 배에 몸을 싣고 먼 길 떠나면 가족들과 아내들은 이별바위 부근에 이르러 더 이상 배를 쫓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이별바위가 당신의 사랑을 지켜줄 것이다.
황포돛배는 영산포 선창 매표소에 가면 승선할 수 있다. 왕복 6km의 뱃길은 40분 정도 걸리는데 한 번에 기관사를 포함해 12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고, 승선료는 8천원이다. 높이 7m, 길이 12.5m, 폭 2.5m의 돛배가 관광객을 태운다. 선창에서는 황포돛배보다 더 큰 배인 96톤급 왕건호도 운항중이다. 왕건호는 영산포선착장부터 다시 회진마을 앞까지 10km 구간을 55분 동안 운항한다.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 중 10여 년 동안을 유배생활하시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던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1957년 복원하였고 그 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 동암 다산동암이란 현판에 판각된 글씨는 다산 정약용의 친필을 모각한 것이다. � 서암은 제자들의 유숙처였으며, 차와 벗하며 밤 늦도록 학문을 탐구하였다고 하여 일명 「다성각」이라고도 부르는데 1975년에 복원하였다. � 정석 초당 서편 뒤쪽에는 해배(解配)를 앞두고 발자취를 남기는 뜻으로 선생께서 직접 「(丁石)」이란 글씨를 새긴 「정석바위」가 있다. � 약천 초당 뒤편에 있는 샘으로 다산 선생께서 직접 수맥을 잡아 만들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오고 있다. � 다조 마당 앞에 놓여있는 평평한 돌로 ‘차를 끓이는 부뚜막’이란 뜻이며 주위에서 자생하는 차잎을 따다 그늘에 말린 후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였던 반석이다. � 연지석가산 초당 옆에 있는 연못은 1808년 봄 다산 선생께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바닷가의 돌을 가져다가 만든 연못이다. 가운데 조그만 봉을 쌓아 ‘석가산’이라 하고 나무 홈통을 이용하여 산속물을 떨어지게 만들어 ‘비류폭포’라 이름하였다. 이 연못에는 잉어를 길렀으며 유배 생활에서 풀려난 후 제자들이 선생님을 찾아왔을 때 안부를 물었던 내용에도 잉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묻는 구절이 담겨있어 다산의 섬세함을 가늠하게 한다. � 천일각 동암에서 조금 올라가면 목조 건물인 「천일각」이 있는데, 흑산도로 유배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심회를 달래던 곳으로 정면과 측면이 한칸씩인 누각이다. 이곳은 날씨가 좋으면 멀리 완도쪽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이 늦게 오는 지연인 해남, 이 곳에서는 11월 마지막 주까지 단풍 나들이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찰이 있다. 바로 대흥사이다. 대흥사 주차장에서부터 사찰로 올라가는 길은 유선관이라는 고풍스러운 한옥여관과 아름다운단풍터널로 특히 유명하다.이 길은 두륜산에서 흘러내려 대흥사 가운데를 지나 흐르는 대흥사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데, 가을에는 단풍계곡이라 불릴만큼 화려한 단풍을 자랑한다.대흥사에는 표충사라는 사당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의 진영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는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의 진영이 함께 모셔져 있다. 표충사 편액은 조선시대 정조의 친필로 직접 새겼을 정도로 의미있는 사당이다.또, 선과 차를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워준 초의선사의 동상도 만나볼 수 있다. 대흥사로 출가해 강진 백련사에서도 수행하셨던 초의선사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대흥사의 단풍은 대흥사의 북원과 남원을 가르는 금당천을 따라 길게 늘어져있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섞여 11월 말까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